12. 전쟁 의정서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폴란드 정부는 반 히틀러 연합 국가들과 중립 국가와의 외교적 접촉을 활발하게 유지했다. 협력의 척도는 해외 외교 대표자들이 폴란드에 계속해서 파견되었다는 것과 새 대사와 공관장들이 승인되었다는 사실로 가늠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폴란드 정부가 설립된 이후, 영국, 프랑스, 미국, 터키의 전전(戰前) 대사들이 업무를 진행했고 후에 브라질, 체코슬로바키아,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특사들도 파견되었다. 앞서 언급된 4국은 1940년도에 프랑스에서 행해진 폴란드 군대 설립과 관련된 수많은 행사에도 참가했다. 그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폴란드 정부의 국제적인 위치를 드러내며, 동맹국들은 폴란드 군대 재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폴란드 정부가 런던으로 이주한 이후에도 외교관들은 전범위 임무를 계속했다. 1941년 5월, 브와디스와프 라츠키에비츠 대통령은 새 영국 대사에게서 신임장을 수여받았다. 후에 소련과 외교 관계를 회복한 9월, 소련 대사에게서도 신임장을 수여받았으며 11월에는 캐나다 공관장에게 신임장을 수여받았다. 1943년 5월, 2년에 걸친 교황 특사에 대한 논쟁은 결론이 지어졌다 : 영국 정부는 프랑스 폴란드 정부에서 교황청을 대표하던 이탈리아인 알프레도 파치니의 외교특권 보장을 거부하고 영국 시민권자인 대주교 윌리엄 갓프리의 임명을 받아들였다.
영국의 왕 조지 6세가 서명한 세실 프란시스 도머 영국 대사의 신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