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봉기 78주년
01.08.2022
주한 폴란드 대사관은 바르샤바 봉기 78주년 기념일에 피오트르 오스타셰프스키 대사의 글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사진: Biblioteka Narodowa)
8월 1일은 모든 폴란드인들에게 특별한 날이자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큰 반란을 되돌아보고 기억하는 날입니다. ‘W’ Hour인 오후 5시는 바르샤바가 긴 시간 동안 얼어붙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이렌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폴란드의 자유를 위해 63일 동안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떠올릴 뿐 아니라 우리는 그들을 잊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합니다. 이들을 기억하며 78년 전의 사건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폴란드 동부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에 새로운 전쟁이 발발하며 바르샤바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안타깝게도 영웅들의 영광 때문만이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 다가옵니다. 평화를 원하는 국가를 향한 정복, 파멸, 약탈, 섬멸, 확장으로 그 위대함을 가늠하는 전체주의 체제의 병적인 야심으로 인하여 국가의 평화가 깨지는 이러한 경우의 패턴을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자유와 독립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키고 또 지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가치가 있습니다.
동맹국의 즉각적인 지원을 기대했던 봉기군의 희망은 바르샤바 도시처럼 무너졌습니다. 독일의 바르샤바를 파괴하라!는 명령은 슈츠슈타펠(SS)의 허가에 따라 최악의 부대의 손으로 봉기를 진압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볼라 학살은 범죄자들로 구성된 친위대 제 36무장척탄 병사단(SS 돌격여단 디를레방어)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그들의 행진은 주로 민간인에 대한 대량 처형으로 특징지어졌으며, 이 사건의 말없는 증인들은 오늘날의 바르샤바 풍경의 일부가 된 기념 명판에 있습니다. 바르샤바 봉기1년 전인 1943년 4월, 위르겐 슈트로프가 지휘하는 독일 경찰과 SS군은 바르샤바 게토를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폴란드 본국 군대의 군인 카지미에시 모차르스키가 위르겐 슈트로프와 함께 감옥을 공유했다는 것은 공산주의 시대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닙니다.
에리히 폰뎀바흐젤레프스키나 하인츠 라인파르트 등의 많은 바르샤바 사형집행인들이 형벌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후자의 경우 정치권에 뛰어들어 지역사회의 존경받는 시민이 된 것 또한 사실입니다. 바로 이날 파괴된 바르샤바의 사진을 떠올리며 대파괴의 두려움과 수도뿐 아니라 폴란드 전체의 운명을 이해할 가치가 있습니다.
피오트르 오스타셰프스키
주한폴란드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