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지보프스키 대사가 거절한 외교문서
9월 17일 독일 침공군과 싸우던 폴란드는 기습을 당했다. 새벽에 약 150만명 규모의 붉은 군대 군인들이 폴란드 동쪽 영역으로 전진해왔다. 소비에트 연방은 영역을 넓히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1939년 8월 23일 제3제국과 구 소련의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와 바체슬라프 몰로토프가 서명한 독소 불가침 조약 비밀 의정서에도 담겨있는 내용이다.
침략 직전 새벽 3시 경, 구 소련 외무부 차관 블라디미르 포템킨은 바츠와프 그지보프스키 주소련 폴란드 대사를 그의 집무실로 소환해 붉은 군대가 폴란드로 진입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외교 문서를 전달하려 했다. 대사는 폴란드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에 반대했고 문서 수락을 거절했다. 이 외교문서는 부쿠레슈티 폴란드 대사관의 직원들 덕분에 루마니아에서 근무하는 러시아 외교관들에게 비밀리에 전달되었으며 9월 17일 정오 경에 폴란드-루마니아 국경에 있는 쿠티에 있던 벡 장관의 손에 들어갔다. 장관은 대사의 처리를 받아들였고 4개의 폴란드 기관 – 모스크바 대사관, 키예프와 민스크 총영사관, 레닌그라드 영사관 - 직원들에게 소련을 떠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소비에트 당국은 그지보프스키 대사에게만 외교 특권을 부여해 다른 외교관들의 출국을 막았다. 서방 국가 대사들의 압력이 작용한 뒤에야 러시아인들은 입장을 바꿔 폴란드인들에게 출국비자를 내주었다. 폴란드 외교관들은 소련을 10월 10일까지도 떠날 수 없었다. 많은 수고와 개입에도 불구하고 키예프의 폴란드 총영사 예지 마투신스키는 결국 찾을 수 없었다. 내무인민위원회에 의해 수감되고 살해되었을거라 예상된다. “우리는 러시아의 침략으로 인해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 공식 선언만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아니다. 1904년 러시아-일본 전쟁이나 1939년 폴란드-독일 전쟁은 이것의 아주 전형적인 사례다.” 전 외무부 장관 얀 솀베크는 폴란드-소비에트의 관계 몇 달 후에 이렇게 말했다.
1939년 9월 17일 부쿠레슈티 폴란드대사관으로부터 온 소비에트 외교 문서의 내용을 담은 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