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외무부장관 즈비그니에프 라우의 기사: “국가의 자유와 평등만이 제국주의의 위협에 대한 유일한 방어이다”
24.08.2022
폴란드 외무부장관 즈비그니에프 라우(Zbigniew Rau)의 기사: “국가의 자유와 평등만이 제국주의의 위협에 대한 유일한 방어이다”.
사진: Bartosz Peterman / MSZ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세기의 끔찍한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볼 때 유럽 대륙에서 또다른 대규모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유럽 국가들은 평화를 열망한다는 확신이 지배했던 시대의 종막을 알렸다. 비극적인 사건의 전환을 마주하여, 우리는 제국주의가 역사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 세계의 생명줄이며, 우리 모두 서로 다른 방식이더라도 그 파괴적인 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제국주의는 자유세계에 조화로운 방식을 통해서는 물론, 제국주의적 야망, 경향, 또는 단순한 습관에 눈을 감거나, 세력권의 논리에 동의하거나 그에 따라 행동하거나, 또는 강대국들의 역사적 특권의식이나 특정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인정함을 통해서도 영구적으로 통합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에 따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에게 깨어나라는 부름이었으며, 유럽의 미래에 대한 철저한 고민을 해보도록 박차를 가했다. 그러한 고민이 그렇듯이, 토론이 이어졌고, 특히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유럽연합이 제국주의에 대한 안티테제이며, 다수결로 인한 결정의 범위를 확장하고 거부권을 제거하여 현재의 전략적 현실에 상당한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해법은 제국주의적 위협에 대해 우리 대륙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여 독일에게 리더십을 주는 길이 될 것이다.
주변국의 제국주의의 희생양이었던 역사와, 자체적인 반제국주의적 전통 및 정치 사상을 고려하면, 폴란드는 이 논의에 참여할 특별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과 모든 국가들이 자유롭고 동등하다는 확신에 기반한 앞서 언급한 정치 사상은 수백 년 간 전해져 내려온 가장 단순한 캐치프레이즈들 일부에 잘 나타나 있다: “자유로운 자와 자유로운 자, 평등한 자와 평등한 자!”, "우리 없이는 우리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자유와 당신의 자유를 위하여!” 등. 아담 예지 차르토리스키(Adam Jerzy Czartoryski)는 이러한 표현들의 핵심을 1830년에 쉽지만 아주 의미 있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전달했다: “모든 독립 국가는—교회의 공동질서 속의 개인처럼—자신의 정부를 가지고,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사회적 행복을 구축해 나갈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국가를 자산이나 도구로 여기지 못하는 것은 물론 통치할 위치에 있지 않은 그 어느 국가도, 전자가 자신의 국내적 번영과 행복 발달을 위해 좋다고 여기는 일에 간섭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어떤 구실도 외세의 개입이 두 개의 국가를 하나의 사회로 만들기 위하여 공동 체제를 강제할 수 없으며, 이는 자연과 법에 어긋난다.”
폴란드의 입장에서, 오늘날의 유럽은 유럽 대륙의 모든 구석에 있는 개인과 국가 모두의 자유와 평화를 방어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우크라이나와 관련해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의 정체성, 정치 체제, 정치적 소속 및 군사적 동맹을 선택할 자유를 가져야 하며, 언제 독립을 위해 싸움을 지속할지, 언제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앉아야 할지를 결정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 이들의 자유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온전성의 양도불가능성과 상응하는, 다른 모든 주권 국가에 대한 주권 평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평등성은 종합적인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특히 자신의 독립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단을 제공하는 군사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
엉터리 혹은 전무한 지원은 결국 국가들은 국제법 아래 동등한 국가의 지위, 도덕적 지위, 보호를 누리지 못하며, 국가들의 운명, 조건, 위치는 제국 혹은 힘들의 결합에 의해 결정된다는 제국주의적 논리에 대한 충성으로 귀결된다. 모든 유럽 국가들의 자유와 평등의 원칙이 보편적이고 존중받는 것이 되기 위해선, 우크라이나는 우리의 지원을 통해 승리해야 하며, 러시아 제국주의는 중단되고 제압되어야 한다.
하지만 유럽의 제국주의를 중단하고 제압하라는 요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 또는 러시아와 러시아가 끊임없는, 혹은 “얼어붙은” 갈등을 일으켜 영토적 온전성을 침해한 몰도바나 조지아 같은 다른 국가들 간의 관계로 귀결되어선 안 된다. 하지만 파트너들을 지배하고, 자신의 주장을 파트너들에게 강제하고, 파트너들의 권리, 이해, 필요를 무시하거나 그들의 항의에 관심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행위—즉, 제국주의적 경향—는 유럽연합 내에서도 종종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유럽연합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유럽 통합에서 부족한 점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최강대국들의 열망이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배 노력이 러시아의 제국주의가 EU에 침투하는 것을 막는 효과적인 장벽이라고 주장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EU의 의사결정 과정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한다면, 그 개혁은 회원국들의 진정한 자유와 평등에 우호적인 조건을 형성하는 것을 통해 지배 노력을 꺾어, 모든 제국주의적 열망 및 관습을 길들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 이유는, 흔한 믿음과 달리, 국제기관들은 그 자체로 제국주의의 안티테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기관이 모든 회원국들의 자유와 평등에 기반하고 있을 때에만 그렇게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국제기관의 모든 구조적 제도와 관습, 정치 이니셔티브 및 경제적 사업이 위에 언급한 자유와 평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이다. 따라서, EU 회원국의 자유와 평등이 그 형태가 어떠하든 조금이라도 결핍되면,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제국주의에 맞닥뜨렸을 때 특히 취약해진다. 러시아는 자신의 정치 모델과 방식밖에 제공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상당한 경제적 혹은 인구적 잠재력을 가진 파트너, 되도록이면 자신만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시행해온 역사가 있는 파트너들을 찾으면서도, 러시아 제국주의는 특권적인 경제적, 정치적 협력을 제공한다. 다시 말하면, 제국주의는 그 자신과 닮은 형상으로 변화한 유럽 대륙을 제공한다. 즉, 러시아의 지분과 공동으로 정의된 세력권으로 집중된 힘을 가져온다.
그렇다면, EU 회원국의 자유 및 평등 결핍이 제국주의적 위협으로 가는 길을 닦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가 가장 크게 결핍된 부분은 점점 흔해지고 있는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으로, 이는 연합 회원국들 간의 불평등이 자라나도록 한다. 방어연합을 포함한 효과적인 연합을 만들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중소국가들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 이해, 필요를 지키려고 시도했다가는 질 수밖에 없다. 투표에서 지면, 그들의 운명은 다른 국가들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는 그들의 자유가 근본적으로 훼손된다는 의미다. 자유란 우리 스스로의 의지의 힘으로 우리 스스로 만드는 법을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의지를 따르고, 따라서 자유를 유지하게 된다.
평등성의 부족은, 재정적, 경제적 불균형이 고착되어 가고 있는 유로존 내의 불균형으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일부 국가들이 공통 통화를 도입한 이후, 지속가능하고 조화롭게 발전해오지 못하고 있는 국가가 있는 반면, 어떤 국가들은 영구적인 수출 흑자를 운영하며, 자신들의 통화 가치 상승을 다른 국가들의 지속적인 경제적 침체로 메우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평등의 필수적 요소인 기회의 평등을 급격히 감소시키는 체제이다.
자유와 평등의 결핍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경제적 우위와 인구 잠재력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중소국들은 힘을 합쳐도 이길 수 없는 EU 의사결정 과정 내 투표권의 측면에서 최강대국과 강대국의 제도적, 기능적 분할의 고착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분할의 영구성과 실질적 불가침성은 전자가 후자를 제도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지배는, 지배하는 국가가 지배당하는 국가를 대가로 자국의 이익을 강화하는 길을 열어준다. 이 과정은 지배 국가가 일반적으로 자신의 독특한 국가적 이익을 유럽연합 회원국 전체의 공동선으로 정의하고 제시할,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능력에 의해 성공이 담보된다.
이는 러시아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적 관습이 유럽연합 자체에 꽃을 피울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는 조건이다.
노드스트림은 아주 좋은 사례연구 대상이다. 더 싼 러시아 가스에 대한 영구적 접근성을 얻는 것은 러시아를 구소련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비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대가로 경제 공동체에 경쟁적 우위를 제공해야 했다. 러시아 제국주의의 핵심적 정치적 이해관계와 유럽연합 최강대국(독일)의 경제적 야심을 잇는 일은 그 나라의(독일) 제국주의적 방식으로의 영구적인 전환으로 이끌었다. 지배적인 시장 위치를 얻는 일은 공평한 경쟁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유럽 경제가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과 일부 EU 국가 및 우크라이나의 안보 이해관계에 의존하게 되는 대가를 지불한다. 러시아와의 정치적 협력은 동맹국들, 특히 NATO의 동쪽 지역을 노리는 러시아 제국주의에 가장 크게 노출되어 있는 국가들에 대한 충성보다 선호된 것이기도 하다. 이 모든 행위들은 우연이 아니라, 모두에게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는 순전히 경제적인 유럽 프로젝트로, 즉 회원국의 공동선의 일부로 제시되었던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며 지속적으로 추구한 전략의 결과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침략의 결과로 이 전략이 붕괴된 지금, 공동선은 유럽의 결속력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공동시장에서 독일의 경쟁적 우위의 종말은 러시아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했던 유럽 파트너 국가들을 포함한 모든 회원국들이 가스 소비량을 자발적으로 15% 감소시키자는 (독일이 주장한) 제안으로 이어졌다.
EU내에서 이루어지는 제국주의적 관습을 보여주는 또다른 중요한 사례는 그리스이다. 유로존 형성 이후, 독일 경제는 무역 흑자를 유지해온 반면, 그리스 경제는 (기타 남부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침체, 경쟁력 하락을 겪었고, 그 결과로 부채가 늘어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 통화는 모든 유로존 국가들에게 이로운 것으로, 공동선으로 제시되어 왔다. 2010년의 경제 위기는 이 ‘선’의 변증법적 특성을 드러내었다. 이 공동선은 주로 독일 금융기관의 해외 대출 성공, 그리고 또 마찬가지로 주로 독일 회사들에 의한 수출 성공이었다. 이 위기 동안 이 공동선은 유럽 남부의 채무를 자극하는 잘못된 시스템의 모든 비용을 그리스에게 떠넘겼다. 유럽 남부 국가들의 채무 문제는 번영하는 독일 수출의 다른 면일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유럽 질서, EU 질서는 경험이 보여주듯이 제국주의의 재탄생으로 이어지기 쉬운 경향인 회원국들의 자유와 평등의 파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일이 유럽연합의 지도자 역할을 맡게 하는 제도 조건을 형성하자는 제안은 이러한 자유와 평등의 부족을 크게 악화시키기만 할 것이다. 따라서, 만약 독일이 제안하는 것이 (독일이 책임감을 느끼는 일인) EU를 제국주의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면, 유럽연합은 독일의 리더십이 아니라 독일의 자기제한을 필요로 한다. 그때서야 회원국들의 자유와 평등이 EU로 하여금 원하던 제국주의의 안티테제가 될 수 있게 할 것이다.
제국주의가 유럽연합에 근본적인 위협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로부터 효과적으로 방어하려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따라서 회원국들의 자유는 원칙적으로 유럽의 합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강화하고 이를 EU의 행동과 협력의 주춧돌로 인정하는 일을 요구한다. 회원국들 간의 평등은 회원국들의 발전에 대한 평등한 기회의 복원을 요구하며, 이는 다시 유로존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러한 개혁의 급진성은 일부 유로존 국가들의 제도적인 부분적 채무 탕감, 또는 일시적 혹은 영구적인 자국 화폐로의 회귀 같은 해법들을 선천적으로 배제해선 안 된다. 또한, 이러한 개혁의 움직임과 변화의 방향은 EU 기관들로부터가 아니라 회원국들로부터 나와야 한다. 공동선, 다시 말하면 회원국 모두를 위한 행복과 발전의 원칙을 제시하고 정의하는 일은 회원국들이 해야 하며, 그 결과로 EU 기관들의 개별 기능을 결정하는 것도 그들이 해야 한다. 게다가 이러한 개혁 노력은 제국주의적 정책의 피해를 봤던 국가들이, 과거에 제국주의를 직접 실천했던 국가들보다 제국주의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에 더 잘 기여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개혁을 실행하는 데 실패한다면, 만약 우리가 제국주의적 위협을 마주하여 국가들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아이디어와 실천을 지켜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유럽이 수 세기동안 이룬 진보와 유산과 비교해 지성적, 정치적 후퇴를 가져오는 데 일조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존재론적 도전과제에 당면해 있는데, 이는 유럽 역사에서 새로운 일이 전혀 아니다. 우리 시대의 여명기에, 로마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로 이루어진 공화정을 유지해야 하는지, 주변의 헬레니즘 왕국들의 특성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해야 했다. 공화정을 옹호했던 사람들은 로마가 그러한 헬레니즘적인 제국주의적 변화 속에서 결국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적절하게 경고했다. 이들의 경고는 오늘날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위의 기사는 8월 22일에 폴란드 일간지 Rzeczpospolita에 게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