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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데카이 발디에르: 전쟁의 시기 영웅적인 폴란드인

06.12.2021

폴란드 외교관이 수천 명의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대담한 시도를 했다. 그 결과 최소 수백 명의 사람이 목숨을 건졌다고 모르데카이 발디에르는 전했다

Zdjęcie Mordechaia Paldiela, który jest autorem tekstu

(사진: INM)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어 폴란드가 함락된 뒤에도 외국에 있는 일부 폴란드 재외공관은 계속 열려 있었다. 스위스 베른에서 대사 Aleksander Ładoś와 그의 두 보좌관 Stefan Ryniewicz와 Konstanty Rokicki는 폴란드 유대인을 구출하는 데 힘을 쏟아부었다. 그 구출 작전은 베른에 있는 파라과이 영사인 Rudolf Hügli에게서 입수한 수십 장의 파라과이 문서에 폴란드 유대인들의 이름을 기입하고, 직인을 찍어 파라과이 국민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되다. 이를 통해 소비에트 연방 점령 하의 폴란드 땅에 살고 있던 일부 유대인들을 일본으로 탈출시킬 수 있었다. 그곳 폴란드 공사관에서는 유효한 폴란드 여권을 발행해 유대인들이 다른 목적지로 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유대인을 돕기 위한 더 큰 노력으로 이어져, 주로는 폴란드, 그리고 다른 독일 점령국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대부분 파라과이 여권으로 라틴 아메리카 위장 여권을 발행해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되는 것을 피하도록 도왔다. 독일은 이러한 여권 소지자들을 인질 교환 정책에 따라 특별 수용소에 구금하였는데, 이는 나치 정권이 다양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 사는 독일인들의 귀환을 희망하며 마련한 정책이었다. 폴란드 공사관에 의해 시작된 이 활동은 스위스에 머무르고 있던 두 명의 주요한 유대인 구출 활동가와의 협력으로 이어졌다. 한 명은 Abraham Silberschein으로, 구조 활동을 담당하는 세계 유대인 의회 지부의 책임자였으며, 또 다른 한 명은 Rabbo Chaim Israel Eiss로, Orthodox Agudat Israel 운동 소속이었다. 비슷하게 Yitzhak과 Recha Sternbuch와도 협력이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뉴욕에 본부를 둔 Vaad Hatzalah로 알려진 구조 위원회의 대표들이었다. 폴란드 공사관의 유대인 직원이었던 Julius Kühl 역시 이 위장 여권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폴란드 국민을 파라과이 국민으로 바꾸는 활동은 비밀스럽게 이루어져 파라과이 정부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한 이 활동은 런던에 있던 폴란드 망명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지 못하였지만, 폴란드 망명 정부는 Ładoś가 극히 비정상적인 외교 행동을 취했음을 알게 된 후에 이를 승인하여 폴란드와 라틴 아메리카 국가 간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을 감수했다.

Silberschein은 스위스 경찰 앞에서 한 진술에서 그의 활동이 “스위스에 있는 폴란드 외교 당국과의 완전한 협력하에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였다. 스위스 경찰의 조사를 받던 Juliusz Kühl 역시 “작전은 대사인 Alexander Lados 장관이 완전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수행되었다"고 진술하였다.     

Ładoś는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 Vittel 수용소에 임시 억류 중이던 대부분의 폴란드 유대인들이 소지한 라틴 아메리카 여권에 대해 독일이 의문을 품게 되었음을 눈치채고, 1943년 12월 19일 런던에 있는 폴란드 외무부 장관 Tadeusz Romer에게 급한 전갈을 보내 베를린에 있는 라틴 아메리카 공사관이 개입하여 이 여권을 인정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는 전갈에서 이 여권이 “죽음의 위험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목적으로만 발행되었으며...이 문제는 매우 긴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Lados는 이어서 그다음 달에 제네바에 있는 국제적십자사 본부에도 호소하였다.

베른에 있던 폴란드 공사관이 유대인들에게 막대한 도움이 된 또 다른 중요한 메커니즘은 특별한 라디오 방송국을 사용하여 독일 점령국에 있는 유대인들의 상황을 비밀스럽게 전송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당시 전쟁에 대한 스위스의 중립 정책에 위반되는 것이었다. Jewish Agudat Israel 조직의 Isaac Lewin은 전후 뉴욕의 폴란드 영사관을 통해 이 메시지들을 전달받고, Ładoś가 “나치즘의 불행한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음을 황금 문자로 기록하여 후대에 남길" 가치가 있다고 언급하였다. 1944년 1월 21일, 런던에 있는 Agudat Israel의 책임자인 H.A. Goodman은 폴란드 외교부의 K. Kraczkiewicz에게 “베른에 있는 대사  Ładoś 박사가 취한 가장 유익한 태도"에 관해 쓰면서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가 수행해 왔던 많은 활동이 실행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Julius Kühl은 그의 전후 회고록에서 Ładoś를 “진정한 열방의 의인"이자 “진정한 인도주의자"라고 칭송하면서, 그가 “폴란드 망명 정부뿐 아니라 스위스 외교부에 그가 가진 모든 영향력을 사용하여" 목숨을 걸고 도왔다고 말한다.

1943년 10월 13일 스위스 외무부 장관인 Marcel Pilet-Golaz는 Aleksander Ładoś를 불러 라틴 아메리카 위장 여권 계획을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스위스 외무부 장관은 “나는 그에게 대사관과 영사관 직원들이 자신들의 권한 및 의무 범위를 벗어난 활동을 수행했음을 우리가 알게 되었음과... 그래서 우리가 개입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 Ładoś는 그의 조치는 어디까지나 인도주의적이었기 때문에 폴란드 정부가 스위스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며 분노를 드러냈다. 또한, 위장 여권 소지자들은 이들 국가로 향할 의도가 전혀 없으며, 단순히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베른에 있는 스위스 공사관의 도움으로 라틴 아메리카 위장 여권 계획에서 혜택을 받았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모든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전 스위스 주재 폴란드 대사인 Jakub Kumoch가 실시한 대규모 조사에서 지금까지 3,262명의 이름이 확인되었으며, 이중 796명이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많은 여권에 가족 구성원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혜자의 총수는 아마도 훨씬 많은 8,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이 중 2,000명에서 3,000명이 살아남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목록을 만드는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폴란드 외교관 Ładoś, Ryniewicz와 Rokicki는 스위스에서 추방되고 폴란드 공사관이 폐쇄될 위험을 감수했다. 기록에 따르면, 스위스 당국은 징벌적 조치를 취할 것을 진지하게 검토했으나 군사적 상황이 연합군에 유리하게 바뀌는 것을 보고 조치 직전에 멈추었다고 한다. 연합군에는 폴란드 망명 정부도 속해 있었다.

이것은 홀로코스트에서 나온 기록된 이야기들 가운데 폴란드 외교관들(다른 나라에 주재해 있던 외교관들을 포함해 주로 스위스 주재 외교관들)과 유대인 구조 활동가들의 긴밀한 협력에 관한 아마도 유일한 기록일 것이다. 이 협력을 통해 수천 명의 유대인을 구출할 수 있었으며, 수백 명, 아마도 그 이상의 목숨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Aleksander Ładoś를 필두로, 이 이야기에서 구조를 주도한 이들은 인정받고, 칭송 받아야 마땅하며, 널리 알려져야 한다. 예루살렘의 Yad Vashem은 지금까지 열방의 의인 칭호를 Konstanty Rokicki에게 수여하였다. 바라건대, 이 대규모 구출 작전을 대부분 책임졌던 Aleksander Ładoś와 Stefan Ryniewicz 역시 이른 시일 내에 이 영예에 포함되기를 바란다.

폴란드 민족 기억 연구소와 Narodowy Bank Polski(폴란드 중앙은행)가 합작한 역사 교육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월간 Wszystko Co Najważniejsze(폴란드)에 출판된 글이다.


모르데카이 발디에르(Mordecai Paldiel) - 전 예루살렘 Yad-Vashem 기념관 관장. 그가 이끌었던 팀은 1984년에서 2007년까지 전 세계 수만 명의 사람에게 열방의 의인이라는 명예 칭호를 수여 했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수많은 책 집필. 미국 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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